[독자 마당] 50년 된 조끼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세월이 흘러야 그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 이 두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소중하게 생각되는 존재들이 있을 것이다. 내게는 구입한 지 50년이 된 조끼가 있다. 여태껏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런데 반세기가 넘은 옷이지만 지금도 입을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다. 이 조끼는 내가 30대 초반 나이에 미국에 첫 출장을 올 당시 입었던 옷이다. 당시 미국 출장 기회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그만큼 준비 과정부터 설레는 일이었다. 미국 출장을 앞두고 들뜬 기분에 감색 양복 한 벌을 맞췄다. 동네 양복점에 가 당시 가장 좋은 원단으로 조끼까지 포함된 최고급 양복이었다. 조끼에는 내 30대 초반의 추억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사진 정리를 하다 그 양복을 입고 미녀들과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배경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출장 중에 유명 관광지인 나이아가라 폭포를 방문했다 촬영한 것이었다. 당시 그곳에서는 미스아메리카 선발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어떻게 대회에 참가한 미녀들과 함께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지금 양복은 없어지고 조끼만 보관하고 있다. 옷장에 많은 조끼가 있지만 올겨울에는 유난히 그 감색 조끼를 애용했다. 지금도 입으면 따듯하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조끼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내겐 조끼보다 더 오랜 동반자가 있다. 결혼한 지 50년이 넘은 아내다. 지금 한국에 있는 아내가 무척 그립다. 서효원·LA독자 마당 조끼 감색 조끼 나이아가라 폭포 동네 양복점